메모리 섹터의 사이클이 바뀌고 있다는 게 요즘 체감되는데, 단순한 가격 상승 자체보다는 그게 다음 분기 이후로 무엇을 트리거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론이 실적 이후 급등했다가 곧바로 조정받은 현상을 보면서 느낀 게, 시장이 현재 호실적을 이미 반영 완료했고 지금 신경 쓰는 건 그 이후 구간이라는 거다. 특히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가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까지 갔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게 단순히 '비용 압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마진 임계점과 멀티플의 관계
빅테크 기업들이 마진율을 방어하려고 가격을 인상했을 때, 시장은 보통 두 가지를 평가한다. 첫째는 가격 인상 폭만큼 수요 탄력성이 붕괴되지 않는가, 둘째는 인상분이 실제로 OPM(영업이익률) 회복으로 이어지는가다. 애플의 맥북 가격 인상(최대 25%)은 명백히 공격적인데, 여기서 나중에 나올 실적 가이던스를 봐야 할 포인트가 생긴다.
만약 가이던스에서 유닛 셀 예상이 현 컨센서스보다 약하게 나온다면, 시장이 해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1) 가격 인상이 체인을 거쳐 최종 소비자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다, (2) 소비자가 가격에 반응해서 구매를 미루고 있다, (3) 기업 고객 쪽 수요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이 중 어느 것이든 순수 성장만으로 먹던 시대는 마감되는 신호가 된다.
▶ SaaS 섹터와의 차이점
이전에 쓴 글에서 SaaS의 과금 모델 전환(Seat-based → API 호출 기반)을 다뤘는데, 하드웨어 마진 압박은 그것과는 구조가 다르다. SaaS는 적어도 고객별로 쓰는 량을 통제할 수 있지만, 반도체 가격은 전 산업에 공평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플의 대응책이 경쟁사(삼성, 구글 등)도 똑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 강도에 따라 멀티플이 역차별된다.
메모리 가격이 높게 유지되는 구간에서 고 마진 제품에 의존하는 회사(애플)와 박 마진이지만 볼륨으로 버티는 회사(구글 클라우드)의 OPM 궤적이 갈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게 차기 실적 리뷰에서 섹터 로테이션으로 나타날 수 있다.
▶ IV term structure와의 연관성
요즘 옵션 시장에서 기술주의 IV 기간구조(term structure)가 역전된 패턴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 같다. 단기(30일 내) 변동성보다 중기(90일 이상) 변동성이 더 높은 상황이 계속되는 건, 트레이더들이 이미 '현재 가격 수준에서 다음 분기 이후 여기서 움직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메모리 가격이 장기간 고착화될 경우, 마진 임계점에 먼저 닿는 기업부터 약세를 보일 수 있다.
▶ 실적 시즌 필터
앞으로 나올 실적과 가이던스에서 꼭 봐야 할 항목이 명확해졌다. (1) 제품 가격 인상 후 유닛 셀 변화, (2) 차기 분기 마진율 가이던스(특히 COGS 전망), (3) 원가 상승에 대한 경영진 톤&톤(supply chain 안정화 시점 언급 여부).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약하게 나오면 멀티플 하향은 현재 가격에서 피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