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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수익률보다 메모를 다시 봅니다

마루 | 12:55 | 조회 2 | 좋아요 0

장 한복판인데도 저는 점심시간에 수익률창부터 안 봅니다.

오전장에 손으로 적어둔 메모를 먼저 다시 봅니다.

이 습관이 생긴 게, 많이 맞혀서가 아니라

오히려 장중에 제일 자주 틀리는 시간이 오전 10시 반~11시 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반 방향이 맞는 듯하다가도 그 시간대에 체결이 과열되면 사람 손이 급해집니다.

그때 수익률을 먼저 보면 대응이 아니라 반응을 하게 되더라고요.

종목이 오르면 더 사고 싶고,

밀리면 이유를 찾기도 전에 줄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점심에 계좌보다 메모를 펴서

아침에 적은 가정이 아직 유효한지만 확인합니다.

상승 시나리오를 적었으면 그 전제가 아직 살아 있는지,

하락 시나리오를 적었으면 공포가 아니라 구조로 밀리는지,

딱 그것만 봅니다.


아침에 적는 건 거창한 게 아닙니다.

종이노트 한 페이지를 반으로 접어서 왼쪽엔 오늘 확인할 것, 오른쪽엔 하지 말 것을 씁니다.

확인할 것에는 대개 세 가지가 들어갑니다.

환율이 전일 종가 대비 어떤 톤으로 움직이는지,

선물과 현물의 힘이 같이 가는지 따로 노는지,

그리고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릴 때 중소형주 자금이 버티는지 빠지는지입니다.

하지 말 것에는 더 단순하게 씁니다.

추격매수 금지,

손절 기준 없는 물타기 금지,

개인 수급만 보고 추세로 오해하지 말 것.

이 세 줄이 별거 아닌데,

오전 내내 숫자에 휩쓸린 머리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효과가 꽤 큽니다.

변동성이 큰 날일수록 HTS 화면보다 이 짧은 문장이 더 도움이 됩니다.


점심에 메모를 보는 이유는 오전 수익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오전 해석이 틀어졌는지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지수는 멀쩡해 보여도

실제론 몇몇 대형주만 버티고 나머지가 비는 날이 있습니다.

이런 날은 숫자만 보면 ‘시장은 괜찮다’로 읽히는데,

체감은 전혀 다릅니다.

제 기준에선 이런 괴리가 하루이틀 누적될 때가 더 위험합니다.

특히 대형주 쏠림이 강한데 코스닥과 중소형주 호흡이 계속 짧아지면,

이건 단순한 취향 장세가 아니라

시장 체력이 한쪽으로 몰려 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예전엔 이런 날 장중 강한 종목을 뒤늦게 따라가다가 수익을 토해낸 적이 많았습니다.

지수는 안 무너졌는데 계좌는 피곤해지는 전형적인 구간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점심에 꼭 체크합니다.

오전 상승이 넓은 상승이었는지,

아니면 시총 상단 몇 종목이 만든 착시였는지.

이걸 구분 못 하면 오후 대응이 늘 늦었습니다.


증권사 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IB 쪽이랑 같이 기업 자금조달 구조를 보다 보면,

겉으로는 일정이 예정대로 굴러가는데

실무 현장에선 미세한 경고가 먼저 잡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조건 자체보다 자금이 도는 속도,

서류가 움직이는 템포,

상대방이 문구 하나에 예민해지는 시점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습니다.

시장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오전장 강세 기사 한 줄보다,

누가 샀는지

어디가 비었는지

오른 종목이 얼마나 넓은지

그게 오후 리스크를 훨씬 빨리 말해줍니다.

저는 개별 기업 신용 이벤트를 볼 때도 결제 대금 지연이나 문구 변화 같은 현장 신호를 같이 보려는 편인데,

주식판에서도 결국 같은 버릇이 남았습니다.

표면 숫자보다 돈의 흐름과 속도를 먼저 보는 버릇입니다.


점심 복기에서 제일 자주 적는 문장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추세냐 쏠림이냐.

오전 강세가 추세면 오후에 눌려도 다시 받쳐주는 자금이 들어옵니다.

반대로 쏠림이면 한 번 식을 때 호가가 금방 얇아집니다.

이 차이가 체결강도 숫자보다 체감상 더 큽니다.

추세 장은 눌릴 때 불안하지만 정리가 되고,

쏠림 장은 오를 때 화려한데 식는 순간 어수선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에 급등락이 나와도 일단 메모를 먼저 합니다.

‘왜 오르는지’보다 ‘누가 받치고 있는지’를 적어놓으면,

오후에 흔들릴 때 손이 덜 급합니다.

맞히는 횟수가 늘어서라기보다,

틀렸을 때 덜 크게 틀리게 해줍니다.

그게 계좌에는 더 중요했습니다.


토요일 아침마다 은행이랑 증권 앱 안내 문구를 캡처해서 주간 노트에 붙여두는 이유도 사실 같은 맥락입니다.

유동성이 넉넉한지,

돈의 한계비용이 올라가는지,

사람들한테 권하는 문구가 대출 쪽으로 무거워지는지,

이런 건 당장 지수 한 칸보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훨씬 오래 남습니다.

장중에도 그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오늘 강한 흐름이 정말 시장 전반으로 번지는지,

아니면 제한된 자금이 가장 눈에 띄는 쪽으로만 몰리는지.

제가 최근처럼 관심 종목 수를 일부러 줄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종목이 많아질수록 판단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의 본질보다 잡음에 끌려갈 때가 더 많았습니다.

특히 변동성이 커진 구간에선

많이 보는 사람이 유리한 게 아니라

적게 보되 같은 기준으로 끝까지 보는 사람이 덜 망가집니다.


지금 시각이 12시 55분인데,

오후장은 보통 오전 해석을 확인받는 시간이지

새 논리를 급히 세우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전에 적어둔 전제가 이미 깨졌다면

오후엔 만회보다 축소가 맞는 날이 많았고,

전제가 살아 있다면

굳이 초조하게 손을 더 보탤 이유도 없었습니다.

시장에 오래 남는 데 도움이 됐던 건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이 점심 복기 10분이었습니다.

메모를 다시 보면,

장보다 제 마음이 먼저 과열됐는지부터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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