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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시작 전에 종이노트부터 펼칩니다 [4]

마루 | 11:34 | 조회 7 | 좋아요 0

요즘은 장을 보기 전에 HTS부터 켜지 않습니다.


예전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호가창, 뉴스, 해외선물부터 연달아 눌렀는데요. 그 패턴이 생각보다 매매를 더 잘하게 해주진 않더군요. 오히려 첫 20분에 들어오는 정보가 많을수록 판단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헷갈리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변동성이 큰 날에는 머리가 먼저 반응하고 손이 뒤따르다 보니, 정작 중요한 리스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종이노트에 먼저 적습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딱 세 줄입니다. 전날 장에서 뭐가 과하게 움직였는지, 오늘 체크할 재료가 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현금 비중을 어떻게 둘지입니다. 이걸 손으로 적어두면 이상하게 속도가 늦어집니다. 그 느려지는 시간이 저는 꽤 중요했습니다. 시장이 급할수록 제 판단은 더 느려져야 맞는 편이더군요. 특히 제가 원래 방어적으로 보는 편이라, 급등주를 쫓는 속도보다 손실을 줄이는 속도가 더 중요합니다.


종이로 적는 습관이 좋았던 이유는 기록 때문만은 아닙니다.


생각보다 매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거든요. 상승장에서는 뭐든 더 갈 것 같고, 하락장에서는 뭐든 더 빠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날일수록 대개 한두 개 변수만 과하게 작동합니다. 금리든 환율이든 수급이든, 하나가 시장 심리를 잡아끌면 나머지는 설명용으로 따라붙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걸 나중에 복기할 때 종이노트가 더 잘 보여줬습니다. 화면에 남는 기록보다, 손으로 적은 메모가 제 감정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더군요.


서울에서 살다 보니 주말에 일부러 걸어 다니는 편인데, 시장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강변이든 도심이든 계속 차만 타고 있으면 길이 막히는지조차 감각이 무뎌집니다. 장도 비슷합니다. 화면 안에서만 보면 거래대금이 늘고, 지수가 오르고, 특정 섹터가 강하고, 이런 숫자에 쉽게 끌립니다. 그런데 한번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면 체감이 달라집니다. 종목이 좋아 보여도 수급이 얇으면 금방 꺾이고, 지수가 강해 보여도 내 계좌 체감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 괴리를 인정하는 쪽이 오히려 오래 버텼습니다.


장중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거래가 몰릴수록 ‘지금 안 사면 늦는다’는 압박이 세집니다. 그런데 제 기준엔 늦는 게 문제가 아니라, 틀린 자리에서 빨리 들어가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장중에 뭔가 급해 보이면 오히려 한 번 더 적습니다. 지금 이 움직임이 추세인지, 수급의 일시적 쏠림인지, 아니면 그냥 내 조급함인지 구분하려고요. 이 구분이 안 되면 차트가 아무리 좋아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차트는 결국 내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고 봅니다.


가끔은 이런 방식이 너무 느긋해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변동성이 큰 장에서는 느린 쪽이 살아남는 경우를 더 많이 봤습니다. 특히 현금 비중을 어느 정도 남겨두는 습관이 있으면, 급하게 손절하고 급하게 추격하는 악순환이 확실히 줄어듭니다. 수익률 숫자만 보면 답답할 수 있는데, 저는 그 답답함이 나쁘지 않습니다. 시장은 늘 기회가 있고, 내가 매번 그 기회를 다 잡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는 먼저 종이노트를 펴고, 그다음에만 화면을 봅니다.


아마 제 성향상 이 순서는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빠르게 맞히는 것보다, 덜 흔들리는 쪽이 제 투자에는 더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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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청
삭제된 댓글입니다.저도 급할수록 종이에 한 번 더 적어보는데 확실히 뇌동매매가 줄더라고요.
1시간전

담벼락
삭제된 댓글입니다.저도 아침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전날 장부를 다시 적는 루틴이 있습니다. 화면 속의 수치는 휘발되기 쉽지만, 손으로 기록한 현금 흐름과 결제 일정은 장중에 마음이 흔들릴 때 확실한 기준이 되어주더군요. 급할수록 물리적인 템포를 늦추는 게 장기 투자자에게는 가장 확실한 방어 기제 같습니다.
1시간전

항아리
삭제된 댓글입니다.손으로 적으면 확실히 뇌동매매 충동이 가라앉더라고요. 저도 매수할 때마다 엑셀이랑 메모장에 직접 적어두는데, 화면만 볼 때보다 내 계좌의 체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돼서 마음이 편해집니다.
1시간전

미역국
삭제된 댓글입니다.저는 적을수록 더 물리는 기분이 드는데 님은 대단하시네요ㅠㅠ 종이노트 쓰면 파란 계좌도 좀 빨개질까요.
31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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