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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아 — 강간 후 자살로 공화정을 시작한 여성 (로마)

토순이 | 05.29 | 조회 18 | 좋아요 0

루크레티아(Lucretia)는 로마 신화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게 강간당한 후 자살해, 그것이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의 직접적 원인이 된 여성입니다.

그녀의 자살이 기원전 509년 로마 공화정의 시작을 만들어, 사실상 한 여성의 죽음이 한 정치 체제 — 500년 공화정 — 의 시조가 된 가장 큰 정치 신화입니다.


1. 정체성 — 정조와 정치 혁명의 화신

루크레티아는 로마에서 정조·명예의 가장 강력한 화신으로, 그녀의 강간·자살이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한 정치 체제를 시작한 가장 큰 정치적 효과를 가진 개인 비극입니다.

귀족 가문의 정숙한 여인이라는 로마 여성의 이상상의 원형이 되었고, 후일 셰익스피어의 시 "루크리스의 강간(The Rape of Lucrece, 1594)"·렘브란트의 회화 등 무수한 후대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2. 출생·계보 — 콜라티누스의 아내

로마 귀족 가문 출신으로 콜라티노 도시 장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Lucius Tarquinius Collatinus)의 아내였습니다.

남편이 사촌이자 왕자였던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와 함께 군 막사에서 술자리를 하다가 "누구의 아내가 가장 정숙한가" 내기를 했고, 그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3. 술자리 내기 — 정숙함의 시험

아르데아 포위 중 한 술자리에서 콜라티누스가 자기 아내 루크레티아의 정숙함을 자랑했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아내도 정숙하다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 모든 사람이 자기 집에 가서 아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아내들은 술잔치나 잠에 빠져 있었지만, 루크레티아 혼자 등불 밑에서 시녀들과 양털을 자아내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정숙한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콜라티누스가 내기를 이겼지만, 그것이 섹스투스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4. 강간 — 가장 잔혹한 사건

며칠 후 섹스투스가 콜라티노 집을 방문해 손님으로 환대받았고, 밤에 루크레티아의 침실에 침입해 칼을 들이대며 강요했습니다.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와 한 노예를 함께 죽여 너희 시체를 침대에 두어 너의 정조까지 더럽히겠다."

루크레티아가 사후 명예마저 잃지 않으려 굴복했고, 다음 날 아버지·남편·친척들을 불러 모든 진실을 알렸습니다. "복수해 주십시오"라 부탁한 후 자기 가슴에 단검을 꽂아 자살했습니다.


5. 공화정 시작 — 왕정 폐지

루크레티아의 시체를 들고 그녀의 친척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공화정 시조)가 로마 광장으로 가서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렸고, 격분한 시민들이 봉기해 타르퀴니우스 왕가 전체를 추방했습니다.

기원전 509년 로마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으며, 매년 2명의 집정관(consul)이 선출되는 새 정치 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여성의 자살이 한 왕조의 종말과 한 공화정의 시작이 된 가장 큰 정치 신화입니다.


★ 신의 이야기

루크레티아의 죽음 직후 사건이 로마 정치사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자살한 루크레티아의 시체 옆에서 그녀의 아버지·남편이 통곡하고 있었을 때, 한 친척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평소 어리석은 척하며 — 그래서 별명이 "브루투스(Brutus, 멍청이)" — 타르퀴니우스 가문의 의심을 피해온 영리한 정치가였습니다. 그가 가족이 자기를 위험하게 여기지 않게 위장한 것이었습니다.

브루투스가 루크레티아의 가슴에서 단검을 뽑아 들고 그 피 묻은 칼을 들어올리며 외쳤습니다. "이 가장 정숙한 여인의 피로, 그리고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나는 칼·불·내가 가진 모든 힘으로 타르퀴니우스 가문과 그의 아내 그의 모든 후손을 추적할 것이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로마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가 단검을 자기 가족에게 돌리며 같은 맹세를 요구했고,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브루투스의 위장이 그 순간 벗겨졌습니다. 가족들이 그가 사실은 멍청이가 아니라 가장 영리한 정치 지도자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즉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루크레티아의 시체를 들것에 실어 콜라티노에서 로마까지 운반하라 명령했고, 그 도시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진실을 알렸습니다.

"오 로마 시민들이여, 보라! 우리 왕자가 한 정숙한 여인에게 한 짓을!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일 통치인가? 한 가문의 한 사람이 우리 가족을 함부로 다루는 이 폭정을 더 이상 견딜 것인가?" 그가 타르퀴니우스 가문의 모든 폭정 사례 — 왕이 원로원 의원들을 무차별 처형한 사례, 평민의 재산을 강탈한 사례 등 — 를 하나씩 열거했고,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날 즉시 평민 봉기가 일어났고, 타르퀴니우스 왕과 그의 가족 — 강간범 섹스투스 포함 — 이 모두 로마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다시는 왕을 두지 않기로 결의했고, 매년 2명의 집정관(consul)을 선출하는 공화정 체제를 시작했습니다. 첫 두 집정관이 콜라티누스(루크레티아의 남편)와 브루투스 본인이었습니다. 한 여성의 한 죽음이 한 왕조 — 250년 동안 7명의 왕이 다스린 — 의 종말과 한 공화정 — 후일 500년 동안 지속되며 천 년 제국으로 이어진 — 의 시작이 된 가장 큰 정치 신화의 시조 사건이었습니다.

이 신화가 후대 정치사에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시 "루크리스의 강간(1594)"·렘브란트의 회화 "루크레티아(1664)"·리비우스 역사서·플루타르코스 영웅전·다양한 오페라가 그녀를 다루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현대의 브루투스"로 자처하며 루이 16세를 처형할 정통성을 그녀에게서 찾았습니다. 한 정숙한 여인의 한 자살이 2500년 동안 모든 폭정에 대한 봉기의 신화적 정통성이 된 가장 긴 정치 신화의 영원한 흔적입니다.


루크레티아는 로마 신화 강간 후 자살한 정숙한 여인이자, 그녀의 죽음이 로마 공화정 500년의 시조가 된 가장 큰 정치 혁명의 도화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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