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카누스(Vulcanus, Vulcan)는 로마 신화 불·대장간·금속공예·화산을 관장하는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와 동일시되며 영어 volcano(화산)·vulcanize(가황)의 어원입니다.
시칠리아 에트나 산 아래에 그의 대장간이 있다고 믿어져, 화산 활동이 그의 망치질의 결과라는 신화가 있습니다.
1. 정체성 — 불·대장간·화산
불카누스는 로마에서 그리스 헤파이스토스보다 화산 측면이 더 강조되어, 시칠리아·이탈리아 본토의 화산 활동이 모두 그의 대장간에서 일어난다고 믿어졌습니다.
망치·집게·모루가 그의 상징이며, 모든 대장장이·금속 공예가·도공·유리 공예가의 수호신이었습니다.
2. 출생·계보 — 그리스 헤파이스토스와 동일
유노가 단독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너무 못생기고 약해 어머니가 올림포스에서 던져버렸다는 그리스 헤파이스토스와 같은 출생 신화를 공유합니다.
아내 베누스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고, 베누스가 마르스와 불륜을 저질러 큰 망신을 당한 신화도 그대로 전승되었습니다.
3. 불카날리아 — 8월 23일 축제
매년 8월 23일 불카날리아(Vulcanalia) 축제가 거행되어 한여름 화재 위험에서 도시를 보호하기를 빌었으며, 시민들이 작은 동물·물고기를 화로에 던져 자기 가족을 화재에서 살리는 의례를 했습니다.
한여름 마른 풀밭에 불이 자주 나는 시기에 거행되어 사실상 화재 예방의 종교적 행사였으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폼페이 멸망)이 8월 24일에 일어나 — 불카날리아 바로 다음 날 — 의미심장한 우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4. 시칠리아 에트나 산 — 그의 대장간
시칠리아 에트나 산이 활화산인 만큼 그곳이 불카누스의 대장간이라는 신앙이 강했으며, 화산이 분화할 때 솟구치는 연기·불꽃이 그가 키클롭스 조수들과 함께 망치질하는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리파리 섬·스트롬볼리 화산도 그의 작업장으로 여겨져, 이 일대를 "불카누스의 영역"이라 부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5. 후대 영향 — 화산·가황·스타트렉
영어 volcano(화산)·vulcanize(고무 가황)·vulcanology(화산학) 등 화산 관련 모든 단어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스타트렉의 외계 종족 발칸족(Vulcans, 스팍 부족)이 그의 이름을 가져왔으며, 음악·SF·게임 등 무수한 현대 작품에 그의 이름이 살아 있습니다.
★ 신의 이야기
불카누스 신화가 로마 역사상 가장 결정적으로 등장한 사건이 기원후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입니다. 그 하루 전인 8월 23일이 불카날리아 — 불카누스의 가장 큰 축제 — 였고, 폼페이·헤르쿨라네움 등 캄파니아 일대의 도시들이 화재 예방을 빌며 큰 축제를 거행했습니다. 시민들이 작은 물고기와 동물을 화로에 던지며 "오 불카누스여, 우리 가족을 화재에서 보호하소서"라 빌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다음 날 아침, 베수비오 화산이 갑자기 거대한 분화를 시작했습니다. 화산이 1500년 동안 잠들어 있어 시민들이 그것이 화산인지조차 모르고 있었고, 폼페이는 화산 기슭의 가장 큰 휴양 도시였습니다. 정오 즈음 거대한 검은 구름 기둥이 화산 정상에서 솟아올라 30km 높이까지 치솟았고, 멀리 미세누스에서 그것을 본 로마 함대 사령관 플리니우스가 — 그의 조카 소(小)플리니우스의 편지에 자세히 기록 — "거대한 소나무 모양의 구름"이라 묘사했습니다.
플리니우스가 함대를 보내 시민들을 구하려 했지만, 화산재가 비처럼 쏟아져 배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그는 직접 폼페이 옆 스타비아이까지 갔다가 결국 그곳에서 화산 가스에 질식해 죽었습니다. 폼페이 시내에서는 시민들이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둘째 날 새벽 거대한 화쇄류(pyroclastic flow) — 시속 100km로 흐르는 섭씨 500도의 화산재 — 가 도시를 휩쓸어 모든 살아 있는 자를 즉사시켰습니다.
도시 전체가 4~6m 두께의 화산재에 묻혔고, 1600년이 지난 18세기에 발굴되었을 때 폼페이는 화산재 속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발견이 죽은 시민들의 시체 자리에 생긴 빈 공간들이었습니다. 시체가 부패해 사라진 후 그 자리에 화산재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발굴자들이 그곳에 석고를 부어 시민들의 마지막 순간의 자세 —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부부가 손을 잡고, 노예가 사슬에 묶인 채로 — 가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이 폭발은 불카누스의 직접 분노로 해석되었습니다. 불카날리아 바로 다음 날 폭발이 일어난 우연이 너무 의미심장했고, "시민들이 그의 축제에서 무언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퍼졌습니다. 그 후 로마 전역에서 불카누스 신앙이 더 깊어졌고, 그의 신전에 바치는 헌물이 크게 늘었습니다. 한 신의 한 축제 바로 다음 날 한 도시가 멸망한 가장 큰 자연 재해의 시적 우연이 그의 신화의 가장 강력한 흔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폼페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이 되었고, 그 도시가 시간 속에 멈춰버린 모든 풍경이 한 신의 한순간의 분노의 영원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불카누스는 로마 신화 불과 대장간의 신이자, 그의 축제 다음 날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의 신화적 주인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