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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티이 3형제 — 알바롱가와의 결투, 3대 3 영웅 대결 (로마)

곰돌이 | 05.29 | 조회 16 | 좋아요 0

호라티이(Horatii)는 로마 신화 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시대(기원전 7세기)에 로마와 알바롱가의 운명을 결정한 3대 3 결투에 나선 로마의 세쌍둥이 형제 영웅들입니다.

알바롱가의 쿠리아티이 3형제와 6명 모두 일대일로 결투해, 마지막에 호라티이 막내 한 명만 살아남아 적 3명을 모두 처치한 가장 극적인 영웅담입니다.


1. 정체성 — 3대 3 결투의 영웅

호라티이 3형제는 로마와 알바롱가의 전쟁을 6명의 결투로 대신 결정하기로 한 가장 극적인 평화·전쟁 방법의 주인공입니다.

결투에서 두 명이 먼저 죽고 막내 푸블리우스 호라티우스만 살아남았는데, 그가 영리한 전술로 적 3명을 차례로 처치해 로마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2. 출생·계보 — 호라티우스 가문 세쌍둥이

로마 호라티우스 씨족의 세쌍둥이 형제로, 같은 가문에서 같은 날 세쌍둥이가 태어난 것이 매우 드물어 신적 표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한 누이 호라티아(Horatia)가 있어, 후일 비극의 핵심 인물이 됩니다 — 그녀가 결투 상대 쿠리아티우스 가문의 한 명과 약혼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3. 알바롱가 결투 — 6명의 운명

로마와 알바롱가(로마의 모도시)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양국이 합의했습니다. "전 군이 싸우는 대신 양측 3명씩 6명이 일대일로 결투해 승부를 결정하자, 패한 측이 이긴 측에 복종한다."

로마는 호라티이 3형제, 알바롱가는 쿠리아티이(Curiatii) 3형제 — 우연히 양측 모두 세쌍둥이 — 가 선발되었고, 양국 시민이 보는 가운데 6명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4. 막내의 영리한 전술 — 분산 처치

초반에 호라티이 두 형이 죽고 막내 푸블리우스만 살아남았지만, 쿠리아티이 3형제도 모두 부상을 입었습니다. 푸블리우스가 도망치는 척 후퇴하자 쿠리아티이 3형제가 추격했는데, 부상의 정도에 따라 속도가 달라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푸블리우스가 갑자기 돌아서서 가장 빨리 따라온 — 즉 가장 가벼운 부상의 — 적을 먼저 처치하고, 다음에 두 번째, 마지막에 세 번째를 차례로 처치해 적 3명을 모두 죽이고 로마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5. 누이 살해 — 비극적 결말

영광스럽게 귀환한 푸블리우스가 자기 누이 호라티아를 만났는데, 그녀가 자기 약혼자 — 그가 죽인 쿠리아티이 중 한 명 — 의 망토를 보고 절규하며 자기 오빠를 저주했습니다.

격분한 푸블리우스가 자기 친누이를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이며 외쳤습니다. "로마의 적을 위해 우는 모든 로마 여인은 이렇게 죽으리라!" 그가 살인죄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결국 사면되었고, 로마 정의가 양면적 — 영웅이자 살인자 — 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 신의 이야기

호라티이 신화의 정점이 막내 푸블리우스의 영리한 분산 전술입니다. 알바롱가와의 6인 결투가 시작되자 양측이 격렬하게 싸웠고, 처음에 호라티이 두 형 — 첫째와 둘째 — 가 거의 동시에 죽었습니다. 막내 푸블리우스만 살아남은 상태였고, 적 쿠리아티이 3형제는 모두 살아 있었지만 각자 다른 정도의 부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벼운 부상을 입은 적이 한 명, 중간 부상이 한 명, 무거운 부상이 한 명이었습니다. 푸블리우스가 한 번에 3명을 동시에 상대하면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가 순간 영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망치는 척 후퇴하자, 그러면 그들이 부상의 정도에 따라 다른 속도로 따라올 것이다."

푸블리우스가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쿠리아티이 3형제가 추격했습니다. 예상대로 가벼운 부상의 적이 가장 빨리 추격해 점점 다른 두 형제와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푸블리우스가 충분한 거리가 벌어질 때를 기다린 후 갑자기 돌아서서 가장 빨리 따라온 적과 일대일로 싸웠습니다. 1대 1이라 그가 쉽게 이겼고, 즉시 그를 죽였습니다.

그가 다시 두 번째 적을 향해 달려갔고, 같은 방법으로 일대일 결투에서 처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거운 부상의 세 번째 적이 도착했지만 이미 두 형제를 잃은 상태에서 부상까지 입은 그가 푸블리우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푸블리우스가 그를 처치하며 결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양국 시민들이 환호 또는 통곡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로마가 알바롱가에 대한 종주권을 얻었고, 푸블리우스가 영웅으로 로마로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귀환 직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도시 입구에서 자기 친누이 호라티아를 만났는데, 그녀가 슬피 울며 자기 오빠를 저주했습니다. "오빠, 어떻게 그를 죽였나요? 그는 제 약혼자였습니다!" 그녀가 푸블리우스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망토 — 그가 죽인 쿠리아티이 한 명의 망토를 전리품으로 가져온 — 를 보고 그것이 약혼자의 것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녀가 자기 오빠 앞에서 자기 약혼자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습니다.

격분한 푸블리우스가 자기 친누이를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이며 외쳤습니다. "로마의 적을 위해 우는 모든 로마 여인은 이렇게 죽으리라!" 한 영웅이 자기 친누이를 죽인 것은 가장 큰 친족 살해 죄였고, 그가 살인죄로 즉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시민들 앞에서 변호하며 "내 아들이 로마를 구한 영웅이다, 한 딸의 슬픔보다 한 국가의 영광이 더 크다"라 외쳤고, 시민들이 동의해 푸블리우스가 사면되었습니다. 단 상징적 형벌로 그가 잠시 작은 멍에 아래로 지나가는 — "티굴룸 소로리움(Tigillum Sororium, 누이의 멍에)" — 의례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 멍에가 로마 광장에 영원히 보존되어 모든 시민이 그것을 보며 "영웅이지만 누이를 죽인 자"의 양면성을 기억했습니다. 로마 정의가 한 인간의 영웅적 행동과 잔혹한 행동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결국 국가의 영광을 우선시한 가장 양면적인 시조 신화이며, 18세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명화 "호라티이 3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1784)"가 이 신화의 가장 유명한 시각적 표현으로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호라티이 3형제는 로마 신화 3대 3 결투에서 막내가 적 3명을 차례로 처치한 영웅들이자, 그 후 누이를 살해한 가장 양면적인 시조 신화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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