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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 포도주와 도취의 신, 바카날리아 축제의 주인 (로마)

다람쥐 | 05.29 | 조회 17 | 좋아요 0

바쿠스(Bacchus)는 로마 신화 포도주·도취·광기·연극을 관장하는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와 동일시되며 그의 바카날리아 축제가 기원전 186년 로마 원로원에 의해 금지된 가장 논쟁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카라바조의 명화 바쿠스(1597)·미켈란젤로의 바쿠스(1497)·이탈리아·프랑스 와인 문화의 보편적 상징이 그의 이름입니다.


1. 정체성 — 포도주와 도취

바쿠스는 로마에서 그리스 디오니소스와 동일하게 포도주·도취·광기를 관장하지만, 로마 사회의 엄격한 도덕 규범과 충돌해 가장 논쟁적인 신앙이 되었습니다.

담쟁이덩굴 관·표범 가죽·티르소스 지팡이를 든 풍성한 머리의 젊은 신으로 그려지며, 항상 광기의 여신도들 마이나데스와 함께합니다.


2. 출생·계보 — 그리스 디오니소스와 동일

유피테르와 인간 여성 세멜레(테베의 공주) 사이의 아들로, 그리스 디오니소스와 같은 출생 — 어머니가 유피테르의 본모습을 보다 불타 죽고 유피테르가 태아를 자기 허벅지에 넣어 두 번째 출생 — 신화를 공유합니다.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12신이라는 점이 다른 신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며, 그래서 그가 신·인간 사이의 경계에 있는 가장 양면적 신입니다.


3. 바카날리아 — 비밀 의례

바쿠스 신앙의 핵심 의례 바카날리아(Bacchanalia)가 비밀스럽게 거행되었는데, 입회자만 참여할 수 있고 광기·도취·집단적 흥분이 핵심이었으며 사회적 신분 — 노예·여성·청년 — 의 평등이 일시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의례 안에서 일어나는 음란한 행위·범죄 모의 등의 소문이 퍼져 로마 사회에 큰 논쟁이 되었고, 결국 기원전 186년 로마 원로원이 그것을 금지한 "바카날 금지령(Senatus consultum de Bacchanalibus)"이 발효되었습니다.


4. 바카날 금지령 — 기원전 186년

리비우스의 역사서에 따르면 한 노예가 자기 주인에게 바카날 의례에서 일어나는 범죄 — 살인·강간·위조 등 — 를 폭로했고, 원로원이 즉시 조사한 후 7000명 이상의 신자를 체포해 절반을 처형하는 가장 큰 종교 박해를 시행했습니다.

이 금지령의 청동 비석이 1640년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견되어 현재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리스·로마 종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 중 하나입니다.


5. 후대 영향 — 와인 문화·바쿠스 회화·축제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와인 문화에서 바쿠스가 보편적 상징이 되었고, "바쿠스적(Bacchic)"이라는 영어 단어가 "도취적·열광적"을 의미하는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바쿠스(1497)·카라바조의 바쿠스(1597)·티치아노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등 르네상스 회화의 단골 주제이며, 후대 카니발·할로윈·로큰롤 문화 등 모든 도취·해방의 축제가 그의 신화적 후예입니다.


★ 신의 이야기

바쿠스 신앙이 로마사에 가장 큰 충격을 남긴 사건이 기원전 186년의 "바카날 금지령(Senatus consultum de Bacchanalibus)" 발효입니다. 그 전 수십 년 동안 바카날리아 비밀 의례가 로마 전역에 빠르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본래 여성 신도만 참여했고 1년에 3번 — 봄철에 — 만 거행되었는데, 그것이 점차 남녀 혼합·1년 5번·밤 의례로 확대되었습니다.

의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비밀이었기에 외부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도시 곳곳에 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취된 신도들이 광기 속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자기 가족·재산을 모두 신전에 헌납하고, 심지어 사람을 살해해 그 시체를 숨긴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로마 보수파가 이것을 "로마의 전통 도덕을 무너뜨리는 외래 종교"로 규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86년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평민 청년 푸블리우스 아이부티우스가 자기 어머니와 양아버지에 의해 바카날 의례에 입회시키려 했는데, 그의 정부(情婦) — 노예에서 자유민이 된 히스팔라 — 가 그것을 알고 그에게 경고했습니다. "절대 그 의례에 가지 마세요, 거기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요." 그녀가 자기가 노예 시절 그 의례에 강제로 참가한 경험을 모두 폭로했습니다.

푸블리우스가 집정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에게 가서 모든 것을 알렸고, 포스투미우스가 즉시 원로원에 보고했습니다. 원로원이 분노로 즉시 대규모 조사를 명령했고, 로마 전역과 이탈리아 반도에서 7000명 이상의 바카날 신도가 체포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의례 안에서 정말 살인·강간·위조 — 거짓 유언장 작성·재산 횡령 등 — 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원로원이 최후 처분을 내렸습니다.

약 3500명의 신도가 사형에 처해졌고, 나머지는 추방·재산 몰수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모든 바쿠스 신전과 의례 장소가 파괴되었고, 향후 바카날리아를 거행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강한 법령이 발효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그리스·로마 종교사에서 가장 큰 종교 박해 — 그리스도교 박해 이전 — 였으며, 사실상 로마 국가가 한 외래 종교를 강제로 억압한 첫 사례였습니다.

1640년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방의 한 동굴에서 청동 비석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원전 186년 원로원의 그 금지령 원문이었습니다. 약 1820년 동안 잊혀져 있던 이 비석이 발견되어 현재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그리스·로마 종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 중 하나입니다. 한 신앙이 한 국가에 의해 강제로 억압된 가장 큰 사례로, 후대 모든 종교 박해 — 기독교의 이교 박해, 종교 개혁기 가톨릭의 신교 박해 등 — 의 역사적 원형이 되었습니다.


바쿠스는 로마 신화 포도주와 도취의 신이자, 그의 바카날리아가 기원전 186년 로마 원로원에 의해 7000명이 처벌받은 가장 큰 종교 박해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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