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신의 계보

파우누스 — 자연과 시골의 신, 사티르의 시조 (로마)

다람쥐 | 05.29 | 조회 14 | 좋아요 0

파우누스(Faunus)는 로마 신화 자연·숲·시골·목축·예언을 관장하는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판(Pan)과 동일시되며 반인반염소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로마 외곽 시골에서 가장 사랑받은 토착 신으로, 그의 신탁(faunalia)이 농민에게 가장 신뢰받았으며 후일 사티르·파우니(faunus의 복수)·만화 캐릭터의 보편적 원형입니다.


1. 정체성 — 자연과 예언의 신

파우누스는 로마에서 자연·숲·시골·목축의 신이지만, 동시에 신탁·예언의 신이기도 해 농민들이 그의 꿈 신탁을 받기 위해 그의 신성한 숲에서 잠을 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상반신은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염소의 다리·발굽·꼬리이고, 머리에 작은 뿔이 솟은 모습으로 그리스 판과 거의 동일하게 그려집니다.


2. 출생·계보 — 라티누스 왕의 시조

사투르누스의 아들이라는 전승이 있고, 또는 마르스·키르케 사이의 아들이라는 다른 전승도 있어 출생이 다양합니다.

아내 보나 데아(또는 파우나)와의 사이에서 아들 라티누스(Latinus, 라티움 왕의 시조)를 낳았고, 라티누스가 후일 아이네이아스의 장인이 되어 로마 건국과 직결됩니다.


3. 루페르칼리아 — 2월 15일의 축제

매년 2월 15일 루페르칼리아(Lupercalia) 축제가 파우누스에게 헌정되어, 가장 오래된 로마 축제 중 하나이며 풍요·정화의 의례였습니다.

젊은 사제들 "루페르키(Luperci)"가 거의 알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가죽 채찍으로 만나는 여인들을 — 부드럽게 — 때렸고, 그것을 맞은 여인이 그 해 임신·출산이 쉬워진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4. 발렌타인 데이와의 연결

2월 15일 루페르칼리아가 후일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의 직접 원형이라는 학설이 있으며, 기독교화 후 교회가 이 이교 축제를 발렌타인 성인의 기념일로 흡수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첫 발렌타인 데이 카드(15세기)에 큐피드 모티프와 함께 파우누스의 시골 사랑 이미지가 결합된 것이 확인되며, 현대 발렌타인 데이의 사랑·풍요·짝짓기 모티프가 모두 루페르칼리아의 후예입니다.


5. 후대 영향 — Fauna·동물상·드뷔시

영어 fauna(동물상, 한 지역의 모든 동물)·flora(식물상)에서 fauna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해, 자연·생태학의 가장 기본 용어가 되었습니다.

드뷔시의 교향시 "목신의 오후(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1894)"·말라르메의 시·니진스키의 발레 등이 그를 다뤘으며, 모더니즘 예술의 단골 주제입니다.


★ 신의 이야기

파우누스의 가장 큰 축제 루페르칼리아(Lupercalia)가 매년 2월 15일에 거행된 가장 오래된 로마 축제 중 하나였습니다. 이 축제의 기원이 매우 오래되어 — 로물루스·레무스가 늑대 젖을 먹은 동굴 "루페르칼(Lupercal)" 옆에서 거행됨 — 사실상 로마 시조 이전부터 라티움 일대에 있던 토착 신앙이었습니다. 축제의 목적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도시 정화 — 한 해의 모든 죄와 불순함을 씻어내기 — 와 둘째, 여성의 다산 — 그 해 임신과 출산을 쉽게 만들기 — 였습니다.

축제 당일 새벽 젊은 사제들 "루페르키(Luperci, "늑대 사제들")"가 루페르칼 동굴 앞에 모여 큰 의례를 거행했습니다. 먼저 염소 두 마리와 개 한 마리를 파우누스에게 제물로 바쳤고, 그 동물의 가죽으로 가죽 채찍(februa)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사제 두 명의 이마에 제물의 피를 묻혀 — 후일 양털로 닦아내며 — 두 사제가 큰 소리로 웃어야 했는데, 그것이 의례의 가장 신성한 순간이었습니다 — "정화는 슬픔이 아닌 기쁨에서 온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후 모든 루페르키가 거의 알몸 — 단 가벼운 가죽 띠만 두른 — 으로 동굴을 나와 로마 시 전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가죽 채찍으로 만나는 모든 여인들 — 길에 서서 일부러 기다리는 — 의 손바닥이나 등을 부드럽게 때렸습니다. 그것을 맞은 여인이 그 해 풍요·다산을 약속받는다는 신앙이 강해, 임신이 어려운 여인들이 일부러 길에 나와 사제들의 채찍을 맞으려 했습니다.

이 풍습이 너무도 인기 있어 카이사르 시대(기원전 1세기)까지도 계속되었고, 가장 유명한 사건이 기원전 44년 2월 15일에 일어났습니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이 되어 사실상 왕의 위상을 가질 즈음, 그가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주재했습니다. 그날 그의 부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루페르키 사제로 참여했는데, 그가 거리를 뛰어다니다가 카이사르 앞에 와서 작은 왕관(diadem)을 들고 "오 카이사르여, 이 왕관을 받으십시오, 당신을 왕으로 모시겠습니다!"라 외쳤습니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는 의도를 시민들에게 시험해보는 의례적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침묵으로 답했고 — 왕정에 대한 강한 거부 — 카이사르가 왕관을 거부하며 답했습니다. "나는 왕이 아니다, 유피테르만이 로마의 왕이다." 시민들이 환호했고, 그는 왕관을 카피톨리누스 신전의 유피테르에게 바치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후 3월 15일(이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려 한 의심이 결국 그의 죽음을 부른 것이며, 한 달 전 루페르칼리아의 왕관 거부 사건이 그 의심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축제가 4세기 기독교화 후에도 한참 계속되다가, 494년 교황 겔라시우스 1세가 공식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같은 날짜 — 2월 14일 — 에 새 기독교 축제 "성 발렌타인의 날(Saint Valentine's Day)"을 봉헌해, 사실상 루페르칼리아의 사랑·다산 모티프를 흡수했습니다. 그래서 현대 발렌타인 데이의 사랑 카드·짝짓기 풍습이 모두 루페르칼리아의 직접 후예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한 자연 신의 한 축제가 1500년 후 전 세계 사랑 명절이 된 가장 긴 종교 변형의 사례입니다.


파우누스는 로마 신화 자연과 시골의 신이자, 그의 루페르칼리아 축제가 발렌타인 데이의 직접 원형이 된 가장 영향력 있는 토착 신입니다.


7fdb5d86-6509-4d07-9ceb-4a9694289bf2.jpg


f03a7846-787e-4d33-85fd-7900a71b9f36.jpg


61bd5e4c-a2b5-4651-b6b5-45fcf1d0a7b8.jpg

공유하기
목록보기

목록보기
신고하기

신고 사유를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