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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 따오기 머리의 지혜·문자·달의 신 (이집트)

토순이 | 05.29 | 조회 42 | 좋아요 0

토트(Thoth)는 이집트 신화 따오기(ibis) 머리에 인간 몸을 가진 지혜·문자·과학·달·시간·심판 기록의 신으로, 이집트 상형문자·달력·수학·의학·마법 등 모든 학문의 시조 신입니다.

오시리스의 심판실에서 모든 영혼의 무게 재기 결과를 기록하는 신적 서기이며, 그리스에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와 동일시되어 헤르메스주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1. 정체성 — 지혜와 문자의 신

토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모든 지식·학문·문자·과학의 시조 신으로, 인간에게 상형문자·수학·천문학·달력·의학·마법 등 모든 지식을 가르친 가장 지혜로운 신입니다.

도상에서 따오기 머리에 인간 몸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손에 갈대 펜·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든 영원한 서기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비비원숭이 모습으로도 그려집니다.


2. 출생·계보 — 자생한 지혜의 신

특정 부모가 없는 자생적 신으로, 한 전승에서 라의 입에서 — 그의 첫 말로 — 자생했다 합니다. 다른 전승에서는 호루스와 세트의 결투에서 흘러나온 정자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아내가 마아트(진실의 여신)이며, 둘 사이에서 — 또는 다른 아내들 — 무수한 지혜 관련 신들이 태어났습니다.


3. 상형문자 발명 — 이집트 문명의 시조

토트가 인간에게 상형문자(hieroglyph, "신성한 글자")를 가르친 첫 신으로, 사실상 모든 이집트 문명·기록·문학의 시조입니다.

그가 가르친 문자가 너무도 신성해 — 단순히 글이 아닌 마법이기도 한 — 모든 신전·무덤·신성한 책에 새겨졌고, 5천 년 동안 이집트 문명의 가장 깊은 토대였습니다.


4. 심판실 서기 — 영혼 무게 기록

오시리스의 심판실에서 토트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누비스가 죽은 자의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함께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잴 때, 토트가 옆에서 그 결과를 — 신성한 파피루스에 — 기록합니다.

그의 기록이 사실상 그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신학적 증거가 되며, 토트가 거짓을 기록할 수 없는 — 마아트의 남편이라 진실 그 자체 — 신이기에 그 기록이 절대 정확합니다.


5. 후대 영향 —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연금술

그리스화 이후 토트가 헤르메스(전령의 신)와 결합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 "세 번 위대한 헤르메스")"가 되었고, 그것이 후대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연금술(alchemy)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르네상스 신비주의자들 — 뉴턴 포함 — 이 토트/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를 자기 모든 학문의 시조로 모셨고, 사실상 서양 과학·신비주의의 가장 깊은 신학적 시조입니다.


★ 신의 이야기

토트의 가장 큰 신학적 활약이 그가 인간에게 상형문자(hieroglyph)와 모든 지식을 가르친 사건입니다. 우주 시작 이후 인간들이 — 사실상 짐승보다 약간 나은 — 가장 원시적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할 수 있었지만 자기 말을 기록할 방법이 없었고, 자기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었으며, 자기 농업·의학·천문학 등을 체계화할 수 없었습니다.

토트가 그것을 보고 깊은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그가 다른 신들의 의회에 가서 제안했습니다. "내가 인간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겠다, 그러면 그들이 자기 지혜를 기록·전달할 수 있고, 점차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신들이 — 특히 라가 — 반대했습니다. "인간들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우리 신들의 권위를 위협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만큼 — 또는 더 — 지혜로워질 위험이 있다."

토트가 그 우려를 이해했지만 자기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식은 모든 자에게 — 신·인간 모두 — 신성한 것이다, 그것을 인간에게서 빼앗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 결국 신들이 — 토트의 강한 결심 앞에 — 일정 조건 하에 그가 인간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단 조건이 그가 문자를 너무 단순하게 가르치지 않고 — 신성한 형태로 —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트가 만든 문자가 상형문자(hieroglyph, 그리스어 "신성한 새김")였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알파벳이 아니라 — 모든 그림이 한 의미를 가진 — 신성한 그림 문자였습니다. 매 그림이 동시에 한 단어·한 소리·한 신적 의미를 가져,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신적 마법을 동시에 거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토트가 인간 세계로 직접 내려와 첫 인간 서기들 — 사제·왕 — 에게 그 문자를 가르쳤습니다. 그가 자기 갈대 펜과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들고 매일 같은 학생들에게 — 끝없이 인내로 — 가르쳤고, 학생들이 점차 그 문자를 익혀 자기 자신이 다른 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토트가 문자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동시에 모든 다른 학문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 수학(계산법·기하학)·천문학(별의 운행·달력)·의학(약초·외과술)·건축(피라미드 설계법)·법(공정한 판결법)·음악(악기·작곡)·마법(주문·의례). 사실상 모든 이집트 문명의 모든 학문이 그에게서 직접 나왔습니다.

그가 자기 가르침을 42권의 신성한 책에 모두 기록했고, 그것을 가장 비밀스러운 신전 — 헤르모폴리스(Hermopolis, "헤르메스의 도시") — 의 가장 깊은 도서관에 보관했습니다. 이 42권의 책이 사실상 모든 이집트 학문의 백과사전이었고, 가장 위대한 사제·학자만이 그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 이 책들의 운명입니다. 후일 — 기원전 4세기 —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후 그의 후계자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Library of Alexandria)을 세웠고, 그곳에 토트의 모든 42권의 책 — 사본 — 이 모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고대 세계 가장 큰 지식의 보관소가 되었고, 사실상 그것이 토트의 모든 가르침의 결집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도서관이 — 여러 번의 화재로 — 결국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가장 큰 화재가 기원후 3~4세기 — 정확한 날짜 모름 — 에 일어났고, 토트의 42권의 책 사본을 포함한 모든 — 약 50만 권의 — 책이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지식의 손실이며, 사실상 토트가 인간에게 준 모든 직접적 가르침이 — 그 후 — 사라진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영향은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리스화 이후 토트가 그리스 헤르메스와 결합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 "세 번 위대한 헤르메스")"가 되었고, 그것이 모든 후대 서양 신비주의·연금술·과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 연금술사들·아이작 뉴턴 — 사실상 그가 자기 시간의 절반을 연금술 연구에 — 등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이 토트/헤르메스를 자기 시조로 모셨고, 사실상 현대 과학의 가장 깊은 신학적 뿌리가 토트입니다. 한 신의 한 가르침이 한 우주의 모든 학문의 시조가 된 가장 시적인 이집트 신화입니다.


토트는 이집트 신화 따오기 머리의 지혜·문자의 신이자, 인간에게 상형문자와 모든 학문을 가르친 모든 과학·연금술의 시조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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