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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스 — 풍요와 추수의 여신, 사투르누스의 아내 (로마)

곰돌이 | 05.29 | 조회 26 | 좋아요 0

옵스(Ops, "풍요")는 로마 신화 풍요·추수·부·대지의 풍성함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사투르누스의 아내이자 그리스 신화 레아와 동일시되는 가장 풍요로운 어머니 여신입니다.

영어 opulent(부유한)·opulence(부)·opus(작품)이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하며, 가장 친근한 시골 풍요 여신 중 하나입니다.


1. 정체성 — 풍요와 추수의 여신

옵스는 로마에서 가을 추수의 풍요·곡식 창고의 풍성함·대지의 모든 부를 관장하는 가장 친근한 어머니 여신으로, 모든 농민이 추수철에 그녀에게 큰 의례를 거행했습니다.

도상에서 풍요의 뿔(코르누코피아)을 든 우아한 어머니 모습으로 그려지며, 그녀의 신성한 색이 황금색 — 익은 곡식의 — 입니다.


2. 출생·계보 — 사투르누스의 아내

그리스 신화 레아와 동일시되며, 사투르누스의 아내이자 유피테르·유노·넵투누스·플루토·케레스·베스타 6남매의 어머니입니다.

로마에서 그녀가 단순한 그리스 레아의 변형이 아니라 더 깊은 — 토착 라티움 — 풍요 신앙과 결합되어 더 큰 위상을 가졌습니다.


3. 오피콘시비아 — 8월 25일 의례

매년 8월 25일 "오피콘시비아(Opiconsivia)" 의례가 거행되어, 그 해의 첫 추수 곡식을 그녀에게 바치는 가장 신성한 농업 의례였습니다.

특히 베스타 처녀들이 이 의례를 주재했고, 모든 시민이 자기 집의 첫 새 빵을 그녀의 사당에 가져와 헌물했습니다.


4. 사투르날리아 — 남편과 함께

12월 사투르날리아 축제 동안에도 그녀가 남편 사투르누스와 함께 — 황금 시대의 부부 — 모셔졌고, 두 신의 결합이 사실상 황금 시대 자체의 풍요를 의미했습니다.

시민들이 사투르날리아 잔치에 옵스의 신성한 풍요 상징인 빵·꿀·과일을 항상 함께 차려놓아, 두 신의 호의가 매년 풍요로운 새 해를 가져온다고 빌었습니다.


5. 후대 영향 — Opulent·Opus

영어 opulent(부유한)·opulence(부)·copious(풍부한)·opus(작품·일)이 그녀의 이름과 어원에서 유래합니다. 라틴어 "opus(일·작품)"가 본래 "수확한 곡식"의 의미였고, 모든 예술 작품(베토벤 교향곡 Op. 5 등)의 어원입니다.

음악 작품 번호 "Opus" 표기 — 베토벤 Op. 27·쇼팽 Op. 9 등 — 가 그녀의 이름에서 직접 유래해, 모든 클래식 음악에 그녀의 흔적이 살아 있습니다.


★ 신의 이야기

옵스 신화의 가장 평화로운 측면이 매년 8월 25일의 오피콘시비아(Opiconsivia) 의례입니다. 이 의례가 로마 농업 종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그 해의 첫 추수 곡식 — 밀·보리·콩 — 을 그녀에게 바치는 가장 신성한 농업 의례였습니다. 8월 말이 라티움 지방의 추수 끝나는 시기였고, 농민들이 자기 새 곡식을 처음 가족이 먹기 전 신에게 먼저 바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의례가 가장 특별한 점은 그것이 베스타 처녀들 — 일반적으로 베스타 신전에서만 의례를 거행하는 — 에 의해 직접 주재되었다는 것입니다. 6명의 베스타 처녀가 그날 새벽 자기 신전을 떠나 옵스의 작은 사당 — 카피톨리누스 언덕 옆 — 으로 행진했고, 그곳에서 가장 신성한 의례를 거행했습니다. 이 행렬이 너무도 신성해 모든 로마 시민이 길에 나와 침묵 속에 그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옵스의 사당이 가장 작고 가장 신성했습니다. 그 사당이 너무도 신성해 — 그녀가 모든 풍요·부의 시조 여신이었기에 — 보통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고, 오직 베스타 처녀들과 가장 높은 사제 — 대제사장(Pontifex Maximus) — 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당 안에 그녀의 작은 황금 상이 있었고, 그 앞에 큰 황금 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의례 중 가장 신비한 부분이 베스타 처녀들이 그 황금 그릇에 그 해의 첫 새 곡식 — 황금빛 새 빵 한 덩어리 — 을 두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빵이 모든 라티움 농민의 첫 추수를 대표하는 상징적 헌물이었고, 그것을 옵스에게 바치는 순간 그 해의 풍요가 신에게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례 후 흥미로운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빵 한 덩어리가 의례 후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 베스타 처녀들·대제사장·로마의 가장 가난한 자들에게 — 분배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신성한 빵을 나누는 것이 사실상 첫 사회 보장 의례 같은 것이었고, 풍요의 여신이 가장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 풍요를 직접 나눠준다는 신학적 메시지였습니다.

이 의례가 가장 평화롭게 거행되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3월 15일 — 옵스 의례 5개월 전 —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자기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그 해 오피콘시비아 의례에 가장 큰 헌물을 직접 가져왔습니다. 그가 자기 가문의 모든 황금 보물을 — 옵스의 작은 사당이 사실상 로마의 비밀 보물 창고 역할도 했기에 — 그녀에게 헌물로 바쳤습니다.

그 사실이 후일 밝혀져 — 옥타비아누스가 사실은 자기 가문의 보물을 안전한 옵스의 사당에 숨긴 것 — 큰 정치적 스캔들이 되었지만, 의례 자체가 너무도 신성해 누구도 그것을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옵스의 사당이 그 후 영원히 로마의 비밀 보물 창고로 사용되었고, 황제들이 자기 가장 귀한 보물을 그곳에 보관했습니다. 한 여신의 한 작은 사당이 한 제국의 가장 큰 보물 창고가 된 가장 시적인 종교·정치 결합입니다.

이 모든 옵스 신앙이 4세기 기독교화 후 사라졌지만, 그녀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라틴어 "opus(일·작품)"가 본래 "수확한 곡식"을 의미했고 — 농민의 노동의 결과 — 그것이 후일 모든 종류의 작품 — 예술·문학·음악 — 의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이 "Symphony No. 5, Op. 67"로 표기되는 것 — Op.가 Opus의 약자 — 이 그녀의 가장 영원한 흔적이며, 모든 클래식 음악 작품마다 그녀의 이름이 살아 있는 가장 시적인 신화의 살아남기입니다.


옵스는 로마 신화 풍요와 추수의 여신이자, 그녀의 작은 사당이 로마 황실의 보물 창고가 되고 그녀의 이름이 모든 클래식 음악 작품 번호에 영원히 살아남은 가장 친근한 풍요 여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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