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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루스 — 갈리아 침입을 격퇴한 영웅, 로마 제2의 건국자 (로마)

야옹이 | 05.29 | 조회 18 | 좋아요 0

카밀루스(Marcus Furius Camillus, 기원전 446~365)는 로마 신화·역사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하나로, 5번의 독재관·5번의 개선식을 거친 가장 영광스러운 정치가이며 기원전 390년 갈리아 침입에서 로마를 구한 "로마 제2의 건국자(Pater Patriae)"입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핵심 인물로, 로마 공화정의 가장 큰 위기에서 시민들을 모아 갈리아인을 격퇴한 가장 큰 시조 영웅입니다.


1. 정체성 — 로마 제2의 건국자

카밀루스는 로마 신화·역사에서 로물루스 다음 가는 시조 영웅으로, 기원전 390년 갈리아 침입의 위기에서 로마를 구해 사실상 두 번째 로마 건국자로 칭송됩니다.

5번의 독재관·5번의 개선식·1번의 censor 직위를 거친 로마 공화정 가장 영광스러운 정치 경력의 인물이며, 모든 후대 로마 정치가의 모범입니다.


2. 출생·계보 — 푸리우스 가문

로마 귀족 푸리우스(Furius) 가문 출신으로, 청년 시절부터 군 경력을 시작해 점차 정치적으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그가 평생 평민과 귀족 양쪽에서 — 양면적으로 — 지지를 받은 드문 정치가로, 사실상 모든 시민의 영웅이었습니다.


3. 베이이 정복 — 첫 큰 승리

기원전 396년 카밀루스가 독재관으로 추대되어 로마의 가장 오래된 적 —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이(Veii) — 를 마침내 정복했습니다. 그가 10년의 포위 끝에 — 지하 터널을 파서 도시 안으로 침투해 — 베이이를 함락했고, 그것이 로마 공화정의 첫 큰 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이 너무 컸기에 시민들이 그를 시기해 — 횡령 죄로 — 그를 추방했습니다. 카밀루스가 격분해 자기 도시를 떠나며 "오 신들이여, 로마인들이 나를 그리워하게 만들어주십시오!"라 외쳤고, 그 저주가 곧 실현되었습니다.


4. 갈리아 침입 — 로마의 가장 큰 위기

기원전 390년 갈리아 족장 브렌누스(Brennus)가 이끄는 갈리아 군대가 알리아 강에서 로마군을 격파한 후 로마 시 자체를 점령해 대부분을 약탈했고, 카피톨리누스 언덕만 마지막 저항군이 농성했습니다.

시민들이 추방된 카밀루스를 다시 불렀고, 그가 외곽 도시 베이이(자기가 정복한)에서 새 군대를 모집해 갈리아인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5. "패자에게 화 있을진저" — 가장 유명한 장면

카밀루스가 도착하기 직전 갈리아 족장 브렌누스가 로마 시민들에게 1000파운드 금을 보상으로 요구했고, 저울로 무게를 재던 중 — 갈리아인이 무거운 저울 추를 추가해 더 많은 금을 받으려 한 — 로마인이 항의했습니다.

브렌누스가 자기 칼을 저울에 던지며 "Vae victis!(패자에게 화 있을진저!)"라 외친 그 순간 카밀루스가 도착해 외쳤습니다. "로마는 금이 아닌 칼로 구원받는다!" 그가 즉시 갈리아군을 격파해 모든 금을 되찾았고, 로마를 구했습니다.


★ 신의 이야기

카밀루스 신화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 기원전 390년 갈리아 침입을 격퇴한 사건입니다. 그 해 갈리아의 한 부족 — 세노네스(Senones) — 의 족장 브렌누스(Brennus)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침입했습니다. 그의 군대가 로마 외곽 알리아 강(Allia)에서 로마군과 만났고, 7월 18일 격렬한 전투 끝에 로마군이 거의 전멸했습니다. 이 패배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그 후 7월 18일이 로마 달력에서 "검은 날(dies ater)" — 어떤 종교 의례도 거행할 수 없는 — 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알리아 전투 후 갈리아 군이 무방비 상태의 로마 시 자체로 진격했고, 시민 대부분이 도시를 떠나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영광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80명의 가장 늙은 원로원 의원들이 — 자기들이 도망갈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 자기 가장 좋은 정장 토가(toga)를 입고 자기 집의 상아 의자(curule chair)에 앉아 갈리아 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 위엄을 보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갈리아 병사들이 도시에 들어와 그 노인들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 너무도 위엄 있어 — 신들의 조각상으로 착각해 만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갈리아 병사가 호기심에 한 노인 — 마니우스 파피리우스(Manius Papirius) — 의 흰 수염을 만져보았고, 노인이 분노해 자기 상아 지팡이로 그 병사의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그 병사가 분노로 그 노인을 죽였고, 즉시 다른 병사들이 79명의 다른 노인들도 모두 학살했습니다.

한편 카피톨리누스 언덕(Capitoline Hill)에서는 마지막 저항군이 농성하고 있었습니다. 갈리아 군이 그 언덕을 몇 달 포위했지만 가파른 절벽 때문에 정면 공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어느 밤 갈리아 병사들이 비밀 통로를 발견해 살그머니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적 순간 카피톨리누스의 유노 신전에 살던 신성한 거위들이 — 평소 굶주린 시민들이 음식이 없어도 절대 잡아먹지 않았던 — 갈리아인을 보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울음에 영웅 마르쿠스 만리우스가 깨어 침입자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고, 카피톨리누스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의 포위로 시민들이 굶주려 결국 갈리아와 협상해야 했습니다. 브렌누스가 1000파운드(약 327kg)의 금을 보상으로 요구했고, 로마인들이 동의해 모든 가정·신전에서 황금을 모아 가져왔습니다. 큰 저울이 광장에 설치되어 금의 무게를 잴 때, 갈리아인들이 영리하게 더 무거운 저울 추를 사용해 — 같은 1000파운드라도 — 사실상 1500파운드를 받으려 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했고, 그것을 본 브렌누스가 분노로 자기 칼 — 무거운 갈리아 검 — 을 저울의 갈리아 쪽 접시에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유명한 라틴 표현을 외쳤습니다. "Vae victis!(패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사실상 "패자는 정의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 승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잔인한 선언이었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이 침묵 속에 그 모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결정적 순간 — 갈리아인이 더 무거운 금을 받으려는 정확한 그 순간 — 마차의 큰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카밀루스가 자기 군대와 함께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추방되었던 그가 베이이에서 자기 새 군대 — 시민 자원병들 — 를 모집해 로마를 구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즉시 외쳤습니다. "그 금을 모두 돌려놓아라! 로마는 금이 아닌 칼로 구원받는다(Non auro, sed ferro, recuperanda est patria)!"

카밀루스가 즉시 갈리아군을 공격했고, 그들이 7개월의 포위·약탈로 지친 상태였기에 그의 신선한 군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격렬한 전투 끝에 갈리아군이 격파되었고, 브렌누스도 죽었으며, 모든 약탈한 금·보물이 회복되었습니다. 카밀루스가 그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인정받아 "로마 제2의 건국자(Pater Patriae)"라는 영원한 칭호를 받았고, 그 후 평생 가장 사랑받는 로마 정치가로 5번의 독재관·5번의 개선식을 거쳤습니다. 한 시민의 한 결단이 한 도시의 멸망을 막은 가장 영광스러운 로마 영웅 신화입니다.


카밀루스는 로마 신화 갈리아 침입에서 로마를 구한 제2의 건국자이자, "로마는 금이 아닌 칼로 구원받는다"는 영원한 정신의 시조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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