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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블랫나트) — [꽃으로 빚어진 비극의 여신] (켈트)

야옹이 | 05.29 | 조회 17 | 좋아요 0

블로도이웨드(Blodeuwedd)는 웨일스 켈트 신화의 마비노기온 네 번째 가지인 '마스 맙 마스오누이'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참나무꽃·메도스위트·콩꽃 등 여러 식물의 꽃잎으로 마법사 귀디온과 마스 왕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정수로 빚어진 그녀는 켈트 신화 안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이 지닌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

블로도이웨드의 이야기는 중세 웨일스어로 기록된 마비노기온에 보존되어 있으며, 켈트 세계관에서 자연과 운명, 충성과 배신이라는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근대에는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그녀를 '흰 여신'의 원형으로 해석하며 학문적·문학적 관심을 크게 높였고, 오늘날까지 켈트 신화 연구의 핵심 인물로 남아 있다.


1. 정체성 — 꽃에서 태어난 여인의 이름

블로도이웨드(Blodeuwedd)라는 이름은 웨일스어로 '꽃의 얼굴' 또는 '꽃으로 만들어진 자'를 의미하며, 켈트 언어 특유의 자연 상징이 이름 자체에 새겨진 경우이다. '블로도이'는 꽃, '웨드'는 얼굴·외양을 뜻하는 웨일스어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이야기 결말에서 그녀는 올빼미로 변신하는 저주를 받는데, 이후 웨일스 켈트 전통에서 올빼미를 지칭하는 단어 '블로도이웨드'가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처럼 그녀의 정체성은 꽃과 올빼미라는 두 자연물을 통해 이중적으로 표현된다.


2. 출생·계보 — 마법사들이 빚어낸 기원

켈트 신화 마비노기온에 따르면 블로도이웨드는 귀네드의 왕 마스 맙 마스오누이와 그의 조카이자 마법사인 귀디온 맙 돈이 합력하여 창조하였다. 그녀는 생물학적 부모를 갖지 않으며, 꽃이라는 자연물 자체가 그녀의 '어머니'이다.

그녀가 창조된 직접적 이유는 영웅 리에우 로 귀페스(Lleu Llaw Gyffes)의 운명 때문이었다. 리에우의 어머니 아란로드는 그에게 '인간 여성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저주를 걸었고, 이를 우회하기 위해 마스와 귀디온이 꽃으로 아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켈트 신화 특유의 게스(금기)와 그 회피가 탄생 서사를 이룬다.


3. 핵심 신화 1 — 그로눔과의 밀통, 그리고 살인 모의

리에우와 결혼한 블로도이웨드는 어느 날 페날른의 사냥꾼 그로눔 페브르(Gronw Pebr)를 만나 즉각적인 사랑에 빠진다. 켈트 신화 속 이 장면은 창조된 존재가 자신의 의지를 처음으로 발휘하는 순간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은 사흘 밤을 함께 보낸 뒤 리에우를 제거할 모의를 시작한다.

리에우는 마법적 저주로 인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는 존재였다. 블로도이웨드는 남편을 교묘히 꾀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 즉 강가에서 한쪽 발을 염소 위에 올려놓은 특수한 자세를 취할 때만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아낸다. 이 정보를 그로눔에게 전달함으로써 암살의 기반을 마련한다.


4. 핵심 신화 2 — 올빼미로의 변신과 켈트적 심판

그로눔이 리에우에게 치명적인 창을 던져 상처를 입히자 리에우는 독수리로 변해 도망쳤다. 귀디온은 오랜 추적 끝에 리에우를 찾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며, 이후 블로도이웨드에게 보복이 가해진다. 켈트 신화 마비노기온은 이 복수의 과정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귀디온은 달아나는 블로도이웨드를 추격하여 그녀를 올빼미로 변신시키는 저주를 내린다. '빛을 두려워하며 다른 새들의 미움을 받아 영원히 밤을 떠돌라'는 이 선고는 켈트 신화 특유의 변신 형벌 전통을 잘 보여준다. 꽃의 여인은 밤의 새로 전락함으로써 창조 당시의 본질을 완전히 잃게 된다.


5. 후대 영향 — 문학과 신화학에서의 재해석

20세기 시인이자 신화학자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저서 '흰 여신(The White Goddess)'에서 블로도이웨드를 켈트 대지 여신의 원형으로 해석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광범위한 상징 체계를 부여하였다. 이 해석은 이후 네오페이건 및 위카 전통에서 그녀를 달과 꽃의 여신으로 숭배하는 근거가 되었다.

웨일스 작가 앨런 가너와 소설가 엘런 커시너 등 다수의 현대 작가가 블로도이웨드의 이야기를 소설·시·연극으로 재창작하였다. 켈트 신화 연구자들은 그녀의 서사가 인위적 창조물의 자유 의지,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를 포함한다고 분석하며, 페미니즘 신화 비평의 주요 텍스트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 신의 이야기

마스 왕과 귀디온이 꽃으로 블로도이웨드를 빚어 리에우의 아내로 삼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리에우가 자리를 비운 어느 가을 저녁 페날른의 영주 그로눔 페브르와 마주쳤다. 사냥 도중 길을 잃었다며 성문을 두드린 그로눔을 블로도이웨드는 예의에 따라 성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첫눈에 품은 감정은 예의의 선을 곧 넘어섰고, 켈트 신화가 전하는 이 운명적 만남은 이후 리에우의 몰락과 한 여인의 영구적 형벌을 향해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블로도이웨드는 꽃으로 만들어진 존재였으나 그 가슴 안에는 인간보다 더 뜨거운 욕망이 자라고 있었다.

사흘 밤이 지난 뒤 그로눔이 떠나기를 주저하자, 블로도이웨드는 마침내 리에우를 죽여 함께 살겠노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리에우는 특별한 운명의 보호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말 위에서도, 말 아래에서도 죽을 수 없었으며 오직 강가에서 욕조 위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다른 발은 염소의 등에 얹은 채 서 있을 때에만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블로도이웨드는 남편에게 마치 그 조건이 걱정되어 확인하고 싶다는 듯 간청하였고, 순진하게도 리에우는 아내의 요청대로 강가에서 그 특이한 자세를 직접 시연해 보였다. 숲 속에 숨어 있던 그로눔은 기다리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로눔의 창이 리에우의 옆구리를 꿰뚫는 순간, 리에우는 고통스러운 절규와 함께 독수리로 변하여 날아올랐다. 귀디온은 오랜 방황 끝에 독수리 모습의 리에우를 찾아내어 다시 인간으로 되돌렸고, 완쾌한 리에우는 군대를 이끌고 페날른으로 진격하였다. 그로눔은 죽임을 당하고, 달아나던 블로도이웨드는 귀디온에게 따라잡혔다. 귀디온은 그녀를 죽이는 대신 영원한 치욕을 선고하였다. '너는 다시는 인간의 모습을 가지지 못할 것이며, 빛을 두려워하는 올빼미로 살아가며 모든 새에게 미움받을 것이다.' 켈트 신화가 전하는 이 저주 속에서, 꽃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여인은 어둠 속을 홀로 나는 올빼미가 되어 사라졌다. 웨일스 언어 속에서 올빼미를 뜻하는 단어 블로도이웨드는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꽃으로 태어나 올빼미로 떠돌게 된 블로도이웨드는, 켈트 신화가 경고하는 인위적 창조와 억압된 자유 의지의 가장 서늘한 화신으로 오늘도 밤하늘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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